사람과 사람들......( Bali 일기)

다음은 "영상포럼(1996여름호)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실렸던 글이다. BALI는 나의 첫번째 해외출장지였다.
물론 첫번째라는 사실이 나에게 남다른 인상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후 여러나라를 다녀봤어도..BALI라는 곳은 나에있어 가장 인상깊은 지역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정말 다양하다. 오늘까지 삼십년 가까이를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서로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단 몇 마디만 얘기해 본다면 그들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모 두 다른 모습을 갖고 있기에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때로 두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한다.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나 역시 혼자 살아갈 수는 없음을 매일 매일 확인할 수밖에 없다. 때로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나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그도 또한 사람 살아가는 것의 한 방편이고 보면 이내 그에 대한 미운 마음이 사라진다.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듯 카메라맨이라는 직업도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다른 직업에 비해서 좀더 진하게 그들과 부딪혀야 한다. 영상에 무언가를 담아내는 작업은 피사체를 그저 대상으로 보고 셔터를 눌러대는 일만으로 설명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먼저 카메라맨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그 연후에야 비로소 상대방은 경계를 풀고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벗어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일은 왠지 짜릿함 같은 것이 있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카메라맨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훔쳐보기를 남보다 즐기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카메라맨으로 KBS에 입사한 지 벌써 반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아마도 족히 몇 천 명은 될 것이다. 그 중에 벌써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람도 많지만, 기억하려 한다면 몇백 명쯤은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마음 씀씀이가 쌓아놓은 상추더미만큼이나 풍성한 광주 농산물 시장 진호상회 아줌마, 올해 나이 스물 아홉이지만 유치원 아이같이 순수하기만 했던 록 그룹 BLACK HALL의 drummer 김응윤 씨, 긴 출장 기간을 너스레로 스태프들을 즐겁게 해준 어느 조명감독, 광주에 출장 갔다가 잠깐 시간을 내어 들른 망월동 묘역에서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동생의 무덤가에 꽃 한 발 던져두고 오신 차량부 어느 선배님, 매국노 이완용과 송병준의 자손들이 땅을 찾도록 주선해 준 -지금은 수배중인-토지브로커 할아버지, 가평 산골짜기에서 아직도 장작불에 데워진 아랫목같이 따스한 ·정을 간직한 채 살고 계신 어느 노부부··(이렇게 쓰다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삶의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라면 카메라맨은 어디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한 삶의 냄새를 영상 속에 담아낸다.

지난 3월 말 열흘 동안의 여정으로 나는 발리 출장 길에 올랐다. <도전, 지구 탐험대>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독특한 외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번 취재에서는 리포터가 발리의 전통무용인 께짝 댄스(Kecak Dance)를 배우면서 그들 발리인들의 문화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짧은 여정이었음에도 취재팀은 그곳 발리의 문화를 흠뻑 체험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2억 인구에 l만 3천667개 섬을 거느린 세계 4위 인구 대국이다. 적도부근 5천160km에 걸쳐 펼쳐진 이 섬나라의 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버뮤다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또한 3백 여 종족이 250개 언어를 구사할 만큼 복잡다단한 나라다. 60 여 년 전에 종족간 화합을 목적으로 지금의 바하사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어)가 만들어지고 지금은 인도네시아 어디에서든 표준어인 이 언어가 통용된다.

발리(Bali) 섬은 자와, 수마트라, 보르네오와 더불어 인도네시아의 4대 섬 중 하나이다. 발리 섬에도 역시 바하사 인도네시아어와 그곳의 고유어인 발리어가 쓰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인의 88%가 회교도인 반면, 발리인들의 90% 정도는 '발리 힌두'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발리는 섬 자 체가 힌두교의 문화로 뒤덮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리(Bali)라는 섬 이름도 '제물''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나의 발리 출장 기간의 일기를 공개하려고 한다. 이 일기는 내가 카메라맨이된 후 처음으로 떠난 해외 취재에서 만났던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3월 26일 화요일

호텔 어디에선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Gamelan)이 들린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금속성의 타악기와 관악기의 리듬은 이곳의 끈적끈적한 더위만큼이나 나의 몸을 노곤하게 감싼다. 또 어디선가 연기를 피우는지 야자수를 휩싸고 흐르는 냄새에서도 약간 뭐랄까··· 퇴폐적이고, 신비스럽고, 음산한 분위기 가 느껴진다.

섭씨 30도 정도의 기온과 마치 가습기에 입을 대고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들 정도의 습한 공기가 아니라면 이곳이 적도의 하늘 밑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다.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 가이드 두 분이 우리를 맞았다. 짐을 검사하는 도중에 한 세관원이 내가 든 카메라를 보더니 종이에 이렇게 쓴다.

''US $ 500"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자카르타 공항의 단정하고 정돈된 이미지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말은 많이 듣긴 했으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할지는 몰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 도 없다는 밀이 있단다.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도 많지만 돈만 있으면 안 될 일도 되는 수가 종종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처음에 조금 놀랐지만 가이드가 미리 손을 썼는지 금방 통과되었다.

공항 입국 때의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와 호텔에 앉아 있는 지금 느끼는 신비스러움의 대조적인 교차는 발리에 대한 나의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어디든 밤에 도착할 때면 항상 다음날 아침이 기다려진다. 어둠이 덮고 있는 그곳의 풍경을, 날이 밝은 다음날 아침이면 새롭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열사의 섬, 발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을는지 ....

내가 너무 낭만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난 관광을 위해 이곳에 와 있는 건 아닌데···

3월 27일 수요일

'바롱 댄스(Barong (& Kris) Dance)'의 가믈란 음악, 바롱 신(선의 신)의 현란한 춤, 이런 모든 것들은 흐리멍텅하게만 보이던 발리인들을 다시 보게 했다.

한바탕 호랑이(바롱 신)의 탈춤이 벌어지고 화장을 짙게 한 무희들이 무대에 선다. 화면의 느린 동작을 보듯 허리와 머리를 천 천히 움직이다가 한순간 정지해 손가락을 파르르 떨며 춤을 이어간다. 나무와 철제, 주석 등으로 만든 타악기 연주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바롱 댄스는 선과 악의 싸움이 주된 내용인데, 사람들은 악의 신에 대항해 싸움을 펼치지만 거듭 변신하는 악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 악을 물리치지 못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격렬하게 자해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절정을 이룬다. 이때 성스런 동물 바롱이 등장해 사람들을 구원한다. 이 춤은 선과 악은 공존하며 사람들은 자신 속의 악을 달래고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발리인들의 독특한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라 한다.

그와 더불어 저녁때 관람한 께짝 댄스(Kecak Dance)는 악기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라마 왕자와 시타 공주의 사랑과, 악의 상징인 라와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몇 명의 배우와 백여 명의 코러스(chorus)가 기교 있는 춤과 연기 그리고 "께짝 께짝 쪽쪽··(원숭이 소리에서 유래)" 하는 괴상한 소리의 화음들로 이끌어 간다. 처음에는 거칠게만 보이던 원숭이 소리의 화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하게 그 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을갖고 있는 듯했다. 이 께짝 댄스는 이번에 우리 취재팀이 취재해야 할 주 대상이기도하다.

또 하나 이곳 평민들의 결혼식을 우연히 볼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혼례'라 는 의식은 우리나라보다 더욱 엄숙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의식은 모든 것이 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엄숙한 분위기의 혼례와는 대조적으로 혼례가 끝난 후 벌어지는 축제는 우리의 그 것과 비슷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혼례를 축하하고 신랑 신부가 마을을 한바퀴 돌아 신랑집으로 가는 모습, 그리고 마을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풍속은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3월 28일 목요일

발리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입구의 모양은 탑을 반으로 쪼개어 양쪽으로 나누어 세 운 것 같은 문이 있고, 담으로 둘러싸인 공 간 안쪽에는 꼭대기에 의자의 모양을 만든 탑이 있다. 그리고 탑의 꼭대기에는 정성껏 만든 제물이 올려져 있다. 문의 왼쪽은 악의 신을 상징하고, 오른쪽은 선의 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왼쪽 문에는 악의 신을 위한 음식이 놓여져 있다. 이 점이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악의 존재를 애초에 부정함으로써 세상을 선으로 이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풍속이 있다. 예를 들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줄을 친다거나, 악을 막는 신의 모습의 상을 건물 입구에 세우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의 느긋함도 바로 그러한 대비되는 것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문화에서 기인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바롱 댄스도 그렇고 또 이번에 공연하게 될 께짝 댄스에서도(여기서는 악의 상징인 라와나가 죽긴 하지만 이러한 극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면에서) 결국 그러한 양면성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발리인들의 문화의 흔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월 89일 금요일

며칠 동안 발리를 휘젓고 다녔음에도 발리는 항상 새롭다. 발리에는 2만이 넘는 수의사원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사원들은 210일 (발리힌두 특유의 l년)마다 사원 건립 기념축제를 여는데, 거의 매일 50-60개의 사원에서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그래서 거리를지나다 보면 흔히 축제의 행렬을 볼 수가 있다. 축제가 열리는 동네 길가 양쪽에는 축제를 알리는 상징물을 매단, 긴 대나무들의 행렬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 취재팀이 보았던 축제는 바투리티(Baturiti) 사원의 축제이다. 바투리티는 그 사원이 있는 곳의 지명인데, 섬의 중앙부고원 지대에 있다. 주변은 발리 특유의 산악지형을 이용한, 조형미 넘치는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다. 바투리티 사원은 25개 마을의 사원을 관장하는 사원으로서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210일마다 축제가 열린다. 제사는 저녁 무렵부터 수만 명이 그들 특유의 민속의상을 입고 한자리에 모여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이들의 모습에서 평소에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느릿느릿함이나 초점 없이 흐린 눈동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치 그날을 위해 210일을 살아 온 듯 이 축제에서 모 든 걸 풀어헤친다. 께짝과 바롱 댄스가 공연되고, 가믈란의 음악에 맞추어 온 동네 사람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축제의 땅 발리의 뜨거움을 좀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도대체 이들을 한데 묶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발리인들은 정말 때묻지 않은 것 같다. 자 신들과 다른 얼굴 색을 가진 우리를 보면 경계하는 듯 하다가도 한 번 웃어주면 자신이 마치 선택이라도 받은 듯 그렇게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고운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들을 더럽히는 건 다름 아닌 이방인들의 문화가 아닌가도 생각한다. 지구상 어느 곳엔가 그런 순수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섬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3월 30일 토요일

우리나라는 성년식이라는 행사가 별다르게 남아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너무 어렵게 생활을 연명해야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곧장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해야했고 그러다 보면 어른이 되어 있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했으니 말이다. 요즘에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성년식' 이라는 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긴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사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것 같다. 발리에도 색다른 형태의 가학성(?) 성년식이 우리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성년식의 이름은 '뽀똥 기기(Potong Gigi)' 인데, '이를 갈다(tooth filing)'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의식은 동네 제사장이 성년이 되는 사람의 윗니(송곳니와 앞니)를 줄로 갈기 때문이다. 그 의미중의 하나는 날카로운 이를 가지런하게 함으로써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생겨나게 될 지도 모를 갈등을 미리 막아내기 위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때 당사자는 사악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 만일 사악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한 다. 요즘에도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난단다 .그것이 의학적 혹은 심리적인 이유에서 기인한 쇼크사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이 믿는 신이 존재하는 증거일지도··. 그래서인지 이 뽀똥 기기(Potong Gigi)의 의식에서는 엄숙한 가운데에서도 미묘하게 흐르는 불안이 느껴진다. 행사에 임하는 당사자들도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주위를 둘러싼 아주머니들의 눈에선 눈물이 글썽하고 아버지는 제단 아래에서 안절부절못해 하고 있다. 먼저 거친 줄로 송곳니와 앞니를 갈 고 입을 헹구어 낸 뒤 부드러운 줄로 다듬는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행사 도중 만난 한 소년이 나에게 "Do you believe in God?"라고 묻는다. "No"라고 대답했더니만 "Why?"라고 정색을 하며 되묻는다. 그때 그의 놀라는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으나, 그의 표정에서는 왠지모를 불편함까지 엿보였다. 만약 우리나라 같았으면 그저 "아, 그래요"라고 하며 그냥 인정했을 텐데 .

발리인들에게 있어 종교는 생활 그 자체이다. 어려서부터 그들에겐 신의 존재가 당연시되고, 신과 더불어 생활한다. 아마도 이들은 단 한 번도 신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신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그들 삶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3월 31일 일요일

검은 모래 해변을 달리는 Bull Racing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었다. 취재팀은 '물소 경주(Bull Racing)'를 취재하기 위해 느가라(Negara)로 왔다. 이번 경기는 일곱 팀이 출전했다. 경주를 위해 성장(盛裝)을 한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수레에 한 사람이 타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는 모습은 다시금 이곳 발리의 뜨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2km 왕복구간의 경주가 끝난 뒤 채찍에 얻어맞은 소의 등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코와 입에서는 발리의 뜨거운 공기보다 더욱 뜨거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숨이 차고 목이 말라서인지 씰룩거리는 코와 벌어진 입에서는 코와 침이 흐르고··· 그야말로 전 쟁을 치른 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소의 주인은 소를 파도치는 바다로 끌고 들어가 몸을 씻긴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에 피로 얼룩진 등을 비비고 다시 일어나 육지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소의 모습은 마치 어느 신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림' 같았다.

4월 1일 월요일

발리에서의 7일째 밤을 맞는다. 이제야 이곳의 날씨에 조금 적응이 되었다.

호텔 베란다에 앉아 있다. 파도 소리, 새 소리, 야자수 너머로 반짝이는 별들(앗 모 기 한 마리에 분위기를 깨는 도마뱀까지).

리포터와 같이 공연 연습을 하는 께짝댄스 공연팀의 멤버중에서 이 다 바구스 위스누(I Da Bagus Wisnu)라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 공연을 보았을 때 백여 명의 댄서들 중에서 그는 단연 돋보였다. 깡마른 체구에 큰 키, 그리고 긴 머리칼을 박자에 맞추어 이리저리 뒤흔드는 모습은 마치 그 가 신에 들려있지 않나 생각할 정도였다. 또 그의 움직임은 보는 이를 묘한 긴장 속으로 몰아간다. 사실 께짝 댄스는 그 유래가 신내림 의식(이곳 말로 상향 의식)에 있다고 하니 그도 그럴 법하다. 정말 독특하고 뭐랄까 신비한 매력이 그로부터 느껴진다.

오후 연습 중에 그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가 처음에 나에게 했던 말은 '천도왕 and 러따이우 are my friends.'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다가 그가 말하는 천도왕 and 러따이우가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것을 알곤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막상 웃고 나니 그들에게 우리의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열정을 춤을 통해서 푼다고 한다. 또 그는 초를 조각해서 파 는 사업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그의 아이 이름은 신따로 이다. 그의 부인이 일본사람이라서 이름을 일본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내가 우리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단 며칠동안 당신들의 문화를 습득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라고 묻자, 그는 주위에 구경온 아이들을 가리키며 저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체득한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들도 어른들이 께짝께짝 하자, 따라서 고갯짓 손짓을 하며 짝짝짝 소리를 낸다. 그들도 언젠가는 구스위스(I Da Bagus Wisnu의 약칭)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그들의 몸짓으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으리라.

그가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사람은 어떤 일에 열 중할 때 가장 아름다운가 보다. 나도 나의일에서 그런 열정을 갖고 싶다.

오늘도 역시 축제의 섬답게 덴파사르로 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열리는 마을 축제(제사)를 볼 수 있었다.

모두 하얀색 옷을 입고 그들 특유의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야말로 오랑 발리 (Orang Bali 발리 사람) 들을 영원히 '오랑 발리' 이게 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4월 3일 수요일

창 밖으로 보이는 건 파란 하늘과 구름이다. 현재 시간 오전 8시 43분(서울시간),

밤을 날아서 태평양의 어느 아침을 지나고 있다.

발리, 제물, 야자수, 꽃. 과일. 사원, 파 도, 태양, 바다. 축제.

그야말로 신비의 섬이다. 열흘을 그 섬에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지기보다 모호해지는 부분이 더 많다. 한 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지 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활을 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이번 출장 기간의 새로운 경험은 타인에 대한. 그리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저 아래로 육지와 섬들이 언뜻언뜻 눈에 들어온다. 다시 내가 태어나 성장한 땅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어딘가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러 떠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