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황학동行

거의 3년만에 황학동에 들렀다.
그것도 한밤중에..(.어젯밤 10시가 넘은 시간)

2003년 봄, 초롱이와 친구들이 뛰어놀던 그곳에는 시꺼먼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청계천 도로변을 마치 성곽같이 싸고 있던 삼일아파트들은 2층상가까지만을 남기고 흉물스럽게 잘려져 있다.

어두워서 앞도 분간되지 않는 뒷골목은 쓰레기로 발디딜 틈 없었고..도둑고양이 한 마리만 저 앞에서 제 갈 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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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초 동안'


'1/8 초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이 움직일 수 있을까요?
짦은 시간이죠?
누군가는 그 시간동안 거의 미동도 할 수 없지만, 또 누군가는 많은 거리를 움직입니다.
앞서 가더라도 뒤에 누가 오는지 한번쯤 뒤돌아 보고 손 잡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황학동 이야기<6>서울다방

"서울다방" 오후 5시 반(24동 삼일 아파트 맨 끄트머리)

카메라를 메고 이층 계단을 올라 이곳에 들어서는데……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뛰어나오듯 반갑게 날 맞는다. 아주머니는 오래된 패션이지만 단아하게 옷을 입고 화장을 곱게 하고 있었다.

침침한 다방 안에는 단 한사람도 없다. 널찍한 옛날 다방의 모습, 덩그러니 놓여있는 수족관, 이름 모를 물고기 몇 마리, 나무를 때는 난로, 벽엔 어울리지 않는 장식품들……


“저쪽에 가면 사진 찍을 것이 있어요.” 하며 나의 손을 잡아끈 곳은 오래된 난로가 있는 곳. 예의상 사진 몇 커트 찍고 있자니 주섬주섬 말을 붙인다. 그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18년 동안 다방을 운영해오고 있단다. 예전에 이 건물에 불이 났던 얘기, 자신의 딸 얘기, 또……그리 재미있진 않았지만 열심히 들어주었다. 아마도 오늘 누구와도 얘기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는 말에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찍어도 좋지만 자신의 얼굴만은 찍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예전엔 이곳도 단골손님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손님이 없는 모양이다. 가게가 너무 조용해서 내가 말을 꺼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좀 오겠죠?”

주말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단다. 그래서 주말에는 직접 거리에 나가 커피를 판단다.

누군가 복제 테이프를 팔다가 남은 것을 주고 갔다고 했다. 갈 때 갖고 싶은 테이프를 가지고 가란다. 이것 역시 예의상 몇 개 집어 들고 나왔다.

황학동 이야기<5> 광주식당

"광주식당" 오후 4시
(18동부터 24동 까지 거의 대부분의 판자집들은 철거되었다.)


21동 뒤 삼거리 모퉁이 집, 광주댁 아주머니가 13년째 경영하는 식당이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주위는 집들로 가득했었는데 이제 한두 집만이 동그마니 남아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행상을 하거나 아직 자신의 가게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단골들로 늘 북적댄다. 대낮부터 언성이 높아진 손님의 목소리가 문밖까지 새어나온다.


'삐그덕'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한두 평 남짓의 조그만 공간. 아직 식사 때가 되지 않았지만 뭔가 먹어야 될 것 같기에 떡라면 한 그릇을 시켰다.


옆자리에 앉은 손님-술을 조금 마신 듯한-은 뭔가 자신의 의견을 주절이 주절이 옆 사람에게 늘어놓는다. 둘이 먼가 의견 차이가 있나보다. (파마를 하던 중이었는지 광주댁 아주머니는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다.)
광주댁 아주머니는 라면을 끓이며 그들의 말을 거든다.
"하이고. 그냥 맞다고 혀 ~ !"


밖에 야채를 리어카에 싣고 오신 청량리 아줌마가 왔다. 광주댁 아주머니 큰 손으로 양파며 무, 배추를 골라 가격을 흥정한다. "허 참 그거 얼마나 남는다고 깍는디야.." 값을 흥정하는 그들의 얼굴에선 情이 물컥 배어난다.

황학동 이야기<4>초롱이네식당

"초롱이네 식당" 오후 2시


식당 앞에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친구들이 모두 떠난 곳에 아이 둘이 놀고 있다. 초롱이와 소현이...
(초롱이 부모님은 아파트 20동(?) 뒤켠에서 음식점을 한다. 원래 23동 뒤에서 가게를 했었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이곳 20동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철거된 지역을 벗어나 살고 있지만 방과 후 그들은 이곳 식당 근처에서 논다. 물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다.
주인 잃은 개 두 마리, 역시 친구를 잃은 할아버지와 놀고 있다.

황학동 이야기<3>삼일아파트

아파트는 언젠가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곳 아파트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걸림돌이다.

이 아파트들도 그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황학 지구 재개발 사업” “똘똘 뭉쳐 투쟁하여 주거권을 쟁취하자” “단결” “투쟁, 쟁취”…… 말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

한 때 이곳 아파트에 입주했던 이들은 얼마나 뿌듯한 감정으로 이곳에 입성했을까? 하지만 이 아파트는 이제 ‘투쟁’의 흔적들을 곳곳에 남기고 무너져 가고 있다.
물론 뭔가 조금은 얻어간 사람들도 있고, 쟁취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복도 한켠으로 널린 빨래가 아직 사람 냄새를 풍긴다.


침침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복도를 들어선다.
"공" "공" "공" "X" "X" 이제 집이 비었다(空)는 뜻이리라.
한두 집은 열쇠를 걸고 출타중이고, 대부분은 떠나갔다.



주인 없는 방으로 들어선다. 아이들의 낙서, 몇몇 버리고 간 집기들…… 유리창은 깨어져 있다.


이곳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잃은 슬픈 기억들을 갖고 있다.

황학동 이야기<2> 돌레코드

어디선가 오래된 가요가 흥얼흥얼 흘러나온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다


'돌 레코드'
그 이름같이 마치 석기시대의 유물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잔뜩 먼지와 함께 쌓여있는 LP 디스크들...도처에 여러가지 음악들이 섞여있다.
어느 손님이 와서 이곳 물건을 골라 주인 앞에 내밀 때마다 오히려 주인은 “이곳에 이런 물건이 있었군.” 하며 신기해할지도 모른다.

황학동 이야기<1>2003년 2월 어느 일요일

<<<<황학동 사진 보기>>>>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청계고가...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 숲을 지나면 이내 노란색이었을 -이제는 색이 바랜 - 성냥갑 모양의 일정한 건물들 사이를 지나게 된다. 바로 3.1 아파트, 아파트 동 사이로 얼핏 보이는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

'청계 8가' 표지판을 따라 고가 도로에서 내려선다.

서울 특별시 중구 황학동

도로는 온갖 잡상인과 행인들, 그리고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들로 분주하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카메라, 시계, 군용 야전 침낭, 먼지 쌓인 비디오테이프, 이발소 그림(?)들, 닳고 닳은 국적 불명의 골동품들...이미 잊혀진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사람들이 지나는 인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대낮인데도 이곳저곳 엉덩이를 들이민 포장마차에서는 족발을 삶는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술이 거나하게 오른 취객들의 언성이 드높다.


아파트 너머와는 교묘하게 단절되어 있는 느낌이다.

고가도로 위의 빠른 교통의 흐름에 비해 이곳에는 왠지 빠르게 움직여서는 안될 것 같은 기운이 있다. 숨을 죽이고 그 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는다.

이곳에는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업을 연상케 하는, 쌓여 있는 중고 TV들 나름대로 그 화면마다에는 이곳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비춰진다.

어디선가 오래된 가요가 흥얼흥얼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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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NO WAR

과연 누군가에게
또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앗을 권리가 있는걸까

황학동에서 -초롱이와 소현이


친구들도 하나둘 황학동을 떠나고
초등학교 4학년 초롱이와 2학년 소현이....
방과 후,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다.


◎ 신미라 03/11[05:11] 203.240.191.235
앗~ 꽁지머리!! 여전히 머리를 들볶고 있는 반가운 초롱이.. 뻔덕거리는 자개장이라.. 담에 가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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