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증명

한 장의 사진 그리고... 2004. 5. 26. 11:22
현상하지않은 흑백 필름의 현상을 오래도록 미루고 있다가 .... 일년만에 현상을 했다. (정말 게으른 나, 다행히 촬영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냉장고에 잘 보관 해둔 터에 그다지 많이 손상된 것 같진 않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겹겹이 싸인 봉투 안에 있는 필름에 눈이 갔지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어느새 일년이 흘러버렸다.
그 필름 속에는 작년 5월 어느 날들, 나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때 무너져가는 황학동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물론 지금은 그곳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어서 사진속의 모습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게다.......

하지만 난 그곳이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과 마지막 남았던 그곳의 사람들을 사진 몇 장으로 기억하고 있고 -작년 이맘때도 이미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원래의 제 모습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아직도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따뜻함 혹은 쓸쓸함을 그 사진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 사진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선가 존재했던 사물들,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 뒤에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을 나의 모습을 증명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