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카-언젠가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차가버섯 채취하는 모습을 촬영하기위해  우수리스크에서 7시간동안 차를 달렸다.
차가버섯 채취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 '사마르카' -CAMAPKA 러시아 알파벳으로는 이렇게 쓴다.-라는 시골 마을...어떻게 이렇게 깊은 산속에 마을이 존재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블라디보스톡-하바로프스크 간 도로에서 무려 5시간 정도 산길을 따라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와 잠깐 전화를 하기 위해 이곳 마을을 들렀는데...
마을이 정말 아름다왔다. 또 그곳에서 예쁜 러시아 아이들과 할머니를 만났다. 러시아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나에게 많은 말을 했다.

사마르카-언젠가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우정마을 이야기-(2)

우정마을에 가기 전 인터넷에서 찾아본 우정마을의 모습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연해주 대부분은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이어서 사진을 보면 지평선 위에 집이 몇채 있어도 휑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실제 처음 도착했을 때도 그런 사진 속에서 받았던 썰렁한 인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우정마을 사람들과 일주일을 보내면서 대화가 잘 통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우리네 시골보다 더한 情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 두시간 정도 지난 후에 우수리스크 근처를 지날 때... 저 멀리 보이는 똑같은 빨간 지붕의 '우정마을'이 보이면, 2006년 6월 그곳에서 만났던 따뜻한 사람들 생각을 하며 미소짓겠지.

"지금은 고려말을 잘 모르지만, 다음에 당신들이 온다면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요."
그들의 눈빛은 말보다 더 많은 걸 전해준다.


우정마을 이야기-(1)

올해는 한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처음 이주하여 정착촌을 이룬지 140년 되는 해 라고 한다.
러시아에 이주한 한인들을 고려인-까레이스키-라고 하는데 이들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대부분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그나마 일구어놓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지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소비에트 연방이 뿔뿔이 나뉘게 되고 각각의 독립국들이 자신의 종교와 민족주의를 주장하게 되면서 고려인들은 그들 선조가 정착했던 연해주로 다시 돌아 오는 행로를 밟게 된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30분쯤 떨어진 곳에 '우정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30가구 정도의 고려인들과 몇가구의 러시아인들이 산다. 여기 고려인들 대부분은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재이주 해왔다. 우정마을 사람들은 동북아 평화 연대의 도움과 그들의 자립의지로 조금씩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잊었으나 최근 많은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다시 배우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러시아에서도 변방에 살고 있으면서도  또 소외받는 민족으로 살아왔던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서 한국과 지정학적으로도 가까워진 연해주땅에서 다시 그들의 정체성을 찾고 경제적으로도 한국과의 관계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들이 한국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얻고, 연해주에서 고려인으로 살아감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 연.결.되.어.있.다.

도시에서는 이 있지만 길은 이내 건물뒤로 숨어버린다.
그러나 이곳 연해주에서 은 언제나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길'을 통해 연결되어있다.
그러나 '나'와 '그'는 위태로운 전선 한 가닥으로 혹은 내가 숨쉬는 공기 어딘가를 흐르는 미약한 전파로 연결되어있다.


이곳 연해주와 나는 무엇으로 연결되어있을까?
일년도 안되어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생긴걸 보면
그래도 아주 가느다란 줄로 연결되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