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척 추웠던 지난 3월 3일, 물어물어 찾아간 박병선 옹의 작업실은 그의 8:2 머리같이 단정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그동안 여러분의 목수를 만났지만 이렇게 정리가 잘 된 작업실은 본 적이 없었다.
워낙 많은 장비가 있다보니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빨리 찾고 그것을 이용할수 있다고 하신다.
아직까지 열정적으로 많은 집을 지으신단다. 박병선 옹의 건축의 철칙은 절대 하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란다. 만약 하자가 생긴다면 자신의 생명이 끝날 거라고도 하셨다.
그분이 지은 집을 본적은 없지만 ...그분의 작업실과 그분의 손을 보면 그분이 지으신 집을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목수는 재능도 있어야하지만 내가 맘을 옳게 먹어야돼. 옳은 맘으로 일하는 것이지 돈 벌어야겠다 맘 먹으면 틀려버려 내 말 안틀려요 내가 여기서 돈을 벌어야겠다 맘을 먹으면 내 맘이 버려 버리거든. 집도 마찬가지지, 하루라도 덜해서 내 볼일 볼려고 하는거지 어쨌든지 집을 할려는 맘을 먹는 사람은 내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맘을 먹고 일을 해야 집이 잘되는 것이지 돈을 벌어야 것다고 하면 절대.....세상을 이렇게 살았어요.... 조선 톱...
이거 내가 만든 건디 그전에 이런게 있어야 큰일하지 이런거 없으면 큰일 못혀. 큰나무 썰어야 한께
동네 어르신 들과...
올해 여든 여덟이 되신 김홍술 옹.
지금은 더 이상 당신이 하시던 목수 일은 하실 수 없지만 ...아직 당신의 손과 예전에 사용하던 녹슨 도구들에선 당신의 고집이 묻어난다.
이분들을 만나고 정말 큰 어르신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리고 일생을 하나의 뜻을 갖고 올곳이 살아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었다.
목수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집을 지었다. 이분들이 바로 저 손으로 삶을 지어왔다. 나도 내 손으로 삶을 짓는다. 당신도... 우리는 다 목수다.
감히 대가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김대벽 1929년 함경북도 행영에서 출생. 현재 해라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주요 작품으로 <한국의 가면 및 가면극> <문화재대관 - 무형문화재편> <중요민속자료편> 등의 사진을 전담 촬영했다.
신영훈 1935년 개성 출생. 1959년부터 국가지정 중요 국보, 보물 보수에 종사했다. 1962년부터 1999년까지 문화재 전문위원을 역임했고, 한옥문화원 원장, 해라시아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작품은 전남 승주 송광사 대웅보전, 충북 진천 보탑사 3층목탑, 경북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미륵사 용화전, 프랑스 고암서방, 영국 대영박물관 한국관 사랑실 등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옥과 역사> <신라의 기와> <한국의 살림집> <한옥의 미학> <한옥의 건축 도예와 무늬> 등이 있다.